해양 역사와 문화, 세계로 연결되는 교류의 바다를 만나는 곳 국립인천해양박물관
1624년 이덕형(李德泂)을 중심으로 한 사신단은 조선 국왕 인조(仁祖)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바다를 건너 중국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명예로웠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던 이 사행길을 그린 그림이 항해조천도航海朝天圖입니다. 실감 영상 1실에서는 항해조천도를 몰입감 있는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신단의 한 사람이 되어 바다를 누비고 여정 속 희로애락을 함께 느껴 보세요.(러닝타임 7분)
개항을 통해 제물포에는 많은 외국 문물이 유입되고 시외전화, 철도가 최초로 개통되었습니다. 또한 1918년에 쌓아 만들어진 인천항 갑문을 통해 조수간만의 차와 관계없이 대형 선박이 언제든 서해를 드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물포 개항과 인천항 갑문 축조로 변화된 인천항의 모습! 실감 영상으로 즐겁게 확인해 보세요.(러닝타임 7분)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통한 교류를 살펴봅니다.
신석기 시대의 조개팔찌는 대개 투박조개를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투박조개의 서식지는 한반도 남해안과 일본 동북 지역입니다. 한편 일본 서부 규수 지역에서도 투박조개를 재료로 하는 조개팔찌가 다수 발견되는데, 이는 신석기 시대 해양을 통해 한일 간 밀접한 문화적 연계성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신석기 시대에 칼이나 화살촉 등으로 가공하여 사용하였던 흑요석의 조각입니다. 흑요석은 화산분출로 인해 형성되는 화산암으로, 형성된 지반에 따라 성분이 달라 원산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흑요석은 대부분 일본 서부 규슈 지역의 것으로, 신석기 시대의 한일 간 해양 교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천 영종도에서 출토된 오수전과 화살촉입니다. 오수전은 중국 한무제 때 제작‧유통된 화폐로, 영종도를 거쳐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해양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천 늑도에서 출토된 야요이계 토기입니다. 늑도 유적에서는 일본 북부 규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야요이계 토기가 대량으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과 동전, 항아리들을 비롯하여 멀리 연해주의 토기 등도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초기 철기시대, 바닷길을 따라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경로에 늑도가 위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경산수화로, 좌측 상단에 '능허대에 봄의 조류가 반쯤 들어왔을 때'라는 문구를 통해 묘사된 풍경이 인천 능허대 일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천 연수구 옥련동 일대인 능허대는 백제 시대부터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의 출발지로 추정됩니다.
고령군에서 출토된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입니다. 굽다리 접시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유행한 토기의 형태로, 특히 가야에서는 지배층의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제기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또한 뚜껑이 있는 접시 형태의 토기와 제작 기술은 바다를 통해 일본으로 전래되어 일본 스에키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인천 옹진군 섬업벌해역에서 출수된 영흥도선의 선체 파편으로, 현재까지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나라 선박 중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1척의 선박 몸체와 9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유물 발견 신고와 탐사, 유물 분포 범위에 대한 정밀 조사와 침몰 선박의 발견, 발굴, 인양까지 실시한 드문 사례입니다.
경주시 용강동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토용입니다. 덥수룩한 턱수염과 우뚝 솟은 코, 큰 눈 등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서역인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복색을 한 서역인 토용은, 당시 신라에서 중국과 일본을 넘어 서역까지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발굴한 마도 1호선 출수 청자 잔과 뚜껑입니다. 잔은 연꽃잎이 펼쳐진 형태가 면이 도드라지는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뚜껑은 면이 들어가는 형태의 음각으로 선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의 대서가 포정박(鮑廷博, 1728-1814)이 엮은 총서로, 고려의 역사와 생활 문화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간 서긍이 작성한 자료로, 고려인의 생활상과 모습이 사실적으로 기록된 당대의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글을 모은 문집입니다. 이덕홍은 임진왜란 직전 왕세자를 호위하는 익위사에 임명되고, 고향인 예안에서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의 전술대책을 논한 상왕세자서(上王世子書)와 국정회복에 관한 상행재소(上行在疏)를 올렸으며, 여기에는 거북선의 그림과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의 글을 모아 간행한 문집입니다. 신유한이 제9차 조선통신사로서 일본을 방문한 여정과 경험한 사실에 대해 기록한 사행록인 『해유록海游錄』이 문집 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자와 인명, 일본으로의 사행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 조선과 일본의 당대 사회상과 교류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발견된 조선시대 조운선입니다. 마도 4호선에서는 분청사기와 목간, 그리고 선원들의 생활용품들이 대거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출토된 목간 대부분에 '나주광흥창'이 쓰여있고, 분청사기 3점에 물품을 관리하던 관청명인 내섬이 적혀있어 마도 4호선이 전라도 나주지역에서 조선의 수도 한양 광흥창까지 오가던 조운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1863년, 익산 함열현의 현감 임교진(林喬鎭, 1803-1865)이 세곡을 배로 실어 나르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세금으로 납부할 곡식을 거두는 것부터 전라도에서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한 뒤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이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전하는 조운(漕運)일기 중 가장 오래된 일기입니다.
1801년, 전라남도 우이도의 홍어잡이 문순득(文順得, 1777-1847)이 풍랑으로 일본 유구를 거쳐 여송(필리핀 루손)까지 표류한 내용을, 당시 우이도에 유배중이던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기록한 책입니다.
한국의 전통 나침반의 일종으로, 24방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전까지 별과 바람을 이용해 항해를 해왔던 뱃사람들은 윤도를 사용하게 되면서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이 남긴 기록입니다. 1653년부터 13년간의 조선에서의 체류 내용을 담고 있어, 우리나라에 대해 서양인이 남긴 가장 이른 시기의 구체적인 저술로 평가받습니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등의 여타 서양 국가에서도 관심을 받아 경쟁적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해당 유물은 1670년 프랑스에서 발행한 초판본입니다.
영국의 해군장교 홀(Basil Hall, 1788~1844)이 1818년 작성한 서해바다에 관한 탐험서입니다. 영국 사절로서 베이징을 방문할 당시 중요 격전지가 될 동아시아에 대한 선제적인 정보 파악을 목적으로, 조선 해안에 대한 지도 작성과 정보수집을 위하여 조선 서해를 탐사했습니다.
1812년 영국에서 제작한 항해용 지구의와 천구의입니다. 지구의는 지형을 파악하여 효율적인 항로를 설정하기 위하여, 천구의는 야간 항해시 별의 위치를 관찰하여 항로를 파악하기 위해 지구의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원활한 방향파악을 위하여 각각의 다리에 나침반이 부착되어 있으며 지구의에는 하와이 제도를 발견한 제임스 쿡의 항로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선교사 뒤 알드(Jean-Baptiste Du Halde, 1674–1743)가 1735년 중국과 그 주변 나라에 관하여 저술한 책입니다. 조선에 관해 작성한 장이 따로 존재하며, 당대의 지도 및 사회 문화적 측면에 관한 간략한 소개, 임진왜란까지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양 최초로 한반도 지도를 독립적으로 소개한 조선왕국전도가 수록되어 있으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표기가 있습니다.
인천의 여러 전경이 수록된 사진첩으로, 인천 개항 25주년을 맞아 1908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인천의 연혁과 현황, 인천항 개척자 명단 등이 수록 되어있습니다. 인천항과 도로, 강화도와 선박 등 각종 인천의 전경 사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세창양행은 한국 최초의 독일계 상사로,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마이어(H. E. Meyer)가 1884년 제물포에 설립하였다. 이들이 조선에 판매한 바늘, 키니네 등 여러 양품(洋品)들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양 석유회사들의 광고 간판입니다. 한반도에서 석유가 처음 사용된 것은 개항기 서양인들에 의해서이며, 1884년 조선에 처음 수입된 석유는 미국 사업가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세운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제품이었습니다. 1897년 스탠다드 석유회사는 인천 월미도에 석유 저장소를 설치했으며, 1898년에는 한성 거리에 석유 가로등이 등장했습니다. 한반도의 석유 시장이 높은 수요와 잠재성을 보이자, 일제강점기에는 미국의 텍사코(Texaco)와 영국-네덜란드의 쉘(Royal Dutch Shell)이 한반도에 들어와 스탠다드 석유회사와 경쟁했습니다.
1908년부터 통감부 농상공부 수산국이 편찬한 수산지로 총 네 권입니다. 전권이 일본어로 쓰였고, 수산 정보뿐 아니라 지형․교통․통신 및 일본인 근거지 형성 여부까지 기술되어 있어, 한국에 진출한 일본 수산업자들에게 정보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한 자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항 갑선거의 설비 현황에 대한 안내지로, 갑선거 설비 현황에 대한 설명과 설계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갑선거란 일정 수위(水位)를 유지할 수 있는 수문인 갑문을 갖춘 선거를 의미합니다.
제3공화국 건설부에서 발행한 항만설계편람으로 1963년 12월 25일 발행되었습니다. 항만을 설계하기 위한 요소인 방파제와 해안보전시설, 선박이 안전하게 항구에 접하여 화물 및 여객을 처리할 수 있도록 쌓는 계선안벽에 관한 내용, 항만의 준설 및 매립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다는 우리나라와 세계가 교류할 수 있도록 기회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해운항만실에서는 그 기회의 출발점과 종착점에 자리한 항만과 해운 물류에 대해 소개합니다.
해사행정 일원화 검토결과에 대한 결재문서로, 국무총리, 대통령 자필 서명이 되어있습니다. 조선, 해운, 선박, 항만에 대한 분산된 정부조직체계에서 효율적인 해사행정을 위하여 조직 개편, 통합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1931년 조선총독부 내무국 토목과에서 발간한 것으로, 조선의 항만 분포, 각 항만의 역사와 현황, 항만 관리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 한반도의 항만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서 조선항만일람도와 인천항평면도 등 40여장의 지도와 인천항, 부산항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원유를 운송하는 원유 운반선으로, 30만 톤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으로 분류됩니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 2022년 제작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생생하게 기록된 바다와 바다와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 삶을 다각도로 살펴봅니다.
젓갈의 생산과 발효, 유통과 저장을 위한 용기의 역할을 합니다. 독의 입은 크기에 비해 넓고 모양은 원통형 또는 원추형이며, 일반 항아리와 비교했을 때 크기가 작고 폭이 좁은 특징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측소에서 집산하여 제작한 달력으로, 1931년 9월 30일에 발행되었습니다. 본문은 매월, 매일별 해가 뜨고 지는 시간, 강수량, 절기와 풍속, 만조와 간조 시간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둡고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문어과 생물의 습성을 이용한 어구입니다. 줄에 여러 개의 단지를 매달아 바닷속에 넣으면, 스스로 들어오는 생물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부표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어구나 작업 구역을 표시하기 위해 수면 위에 띄워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유리부표는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부표로 대체됐다가 현재는 해양오염 등을 고려해 점차 친환경 부표로 교체되고 있습니다.
뻘배는 갯벌에서 어패류 등을 잡거나, 수확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배입니다. 널배, 뻘차 등으로도 불리며, 철사가 촘촘히 박힌 써래를 달고 갯벌을 훑으며 꼬막을 잡습니다.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 속을 긁어낼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윗부분에 있는 큰 갈고리로 굴 껍데기를 찍거나 깨며, 자루 끝의 날로 굴 알을 빼냅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 전매국 주안출장소에서 발행한 책입니다. 염전의 구조, 소금의 품질 등 당시 주안염전에 관한 조사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일염전에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기구입니다. '수차'의 우리말로, 물을 자아올린다는 의미에서 '무자위'라 합니다. 아랫부분을 물에 잠기게 설치하고 염부가 올라서서 날개를 밟으면, 바퀴가 돌며 물을 밑에서 위로 끌어 올립니다.
짐을 운반할 때마다 근로자에게 하나씩 주어 삯을 계산하던 짐표로, 100개가 한 셋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천항만 작업자들이 물에 떠 있는 상태의 원목 위에서 작업할 때,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신었던 작업화입니다.